병원의 문턱, 누가 세울 수 있는가 —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임원 참여에 대한 대법원 2023년 판결을 돌아보며

어느 날, 오래된 동료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의료법인 설립이나 운영은 의사만 가능하지 않나?] 하고 당연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2023년 대법원의 한 판결이 그 답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병원의 문턱, 누가 세울 수 있는가 —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임원 참여에 대한 대법원 2023년 판결을 돌아보며


🍂 새로운 물결, 대법원의 변화된 시선

2023년 8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의료인 A씨가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했다는 혐의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다수의견 8, 반대의견 5로 원심파기하여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기존 대법원은 늘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그 병원을 누가 진짜로 운영했는가?]
의사 명의는 있지만, 뒤에서 자금을 대고 사람을 고용하고 운영성과를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면, [비의료인의 불법 개설]로 보았습니다.


핵심은 “의료법인의 공공성과 비영리성”

대법원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의료법인이란 제도 자체가 비의료인의 자금 출연과 경영 참여를 전제로 만들어졌기에, 그 자체를 이유로 불법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즉,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이사 등 임원으로 활동하며 의료기관에 일정 부분 관여하는 것 자체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비의료인이 [외형상 의료법인을 가장해,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의 이익을 사적으로 챙기고, 의료법인의 공공성과 비영리성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불법입니다.


병원의 문턱, 누가 세울 수 있는가 —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임원 참여에 대한 대법원 2023년 판결을 돌아보며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기준

대법원은 이제부터 [불법 개설 의료기관]으로 판단하려면 아래 2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1.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 및 운영에 주도적으로 개입했을 것

  2. 그 법인이 외형만 갖춘 껍데기 법인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 탈법 수단으로 악용됐을 것

의사 이름만 빌리고 모든 경영은 비의료인이 하고 있다면, 또 그 의료법인이 실제 자금출연도 없이 껍데기처럼 존재한다면, 이건 여전히 범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금도 출연하고, 정식 의료법인의 절차를 따르며, 공공성과 비영리 원칙을 지킨다면, 비의료인의 의료법인 경영 참여도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행정실장의 눈으로 본 이번 판결

정년 퇴임한 병원 행정 전문가로서, 저는 이번 판결을 반가움과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먼저 반가운 점은,
이제 비의료인도 의료법인을 통해 정당하게 의료기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방의료 소외지역에서 자본과 경영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지역 보건의료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연 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큽니다.
그 문틈으로 영리 목적만을 추구하는 자본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진료보다 수익에만 눈이 먼 운영은,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의료의 질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판결의 뜻을 단지 [비의료인도 병원 경영 가능!]로만 읽어선 안 됩니다.
공공성과 비영리성, 이 두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병원의 문을 열 자격이 없습니다.


이 판결이 의미하는 것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수범자인 비의료인에게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제시한 판례입니다.
이제는 최소한 불확실한 법적 지형 속에서 방황할 필요는 없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정착된다면, 의료 취약지역, 특히 농촌이나 도서지역에서도 안정적인 병원 운영과 인력 확보가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조합니다. 공익을 위한 진심이 없으면 어떤 제도도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병원은 단지 ‘건물’이 아닙니다.
여기엔 환자의 생명이 있고, 가족의 희망이 있으며, 우리 같은 병원인의 사명감이 살아 숨 쉽니다.

이제 비의료인도 병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문은 가벼운 마음으로 열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이윤이 아닌, 사명을 짊어질 준비가 되었는가?

이제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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